말하는 뱀, 그리고 간교하다는 말
창세기 3장을 펼치면 곧장 두 가지가 나를 멈춰 세운다. 뱀이 말을 한다는 것, 그리고 본문은 그 뱀을 "간교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동화도 아니고, 현실에서 짐승이 말을 해서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또 간교하다는 말은 어떠한가?
본문은 이 자리에서 친절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본문에서 단서들을 살펴볼 수는 있다.
먼저 창세기 3장이 뱀을 어떻게 소개하는지부터 살펴본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창 3:1). 만약 다른 차원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가 동산에 들어오는 장면을 그렸다면, 차라리 덜 당황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창세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라고 짧게 설명만한다. 이게 내가 가장 먼저 살펴보는 단서다. 뱀은 다른 세계에서 동산으로 잠입한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의 하나로 거기 있었다.
그런데 뱀이 말을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을 통해 하나님이 아담에게 어떤 명령을 하셨는지 뱀이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뱀은 그 명령을 살짝 비튼다.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 2:16-17). 허락이 먼저 나오고, 금지가 나중이다. 그런데 뱀의 입에서 이 말이 다시 나올 때는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로 바뀐다. 허락은 잘려 나가고, 금지만 남았다. 한 단어, 한 어순의 작은 비틀림이지만, 이 비틀림 때문에 하와에게 하나님이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지는 않았을까? 너그러우신 하나님 대신, 인색하고 의심을 살 만한 하나님 말이다.
상당히 고수의 전략처럼 보인다. 이런 전략을 뱀이 자신의 능력으로 행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3장이 첫 단서로 둔 "들짐승 중에"라는 것과, 그 짐승이 보이는 행동이 분명히 어긋난다. 그 어긋남이 본문이 두 번째로 내어 주는 단서다.
이 자리에서 "간교하다"는 평가가 끼어든다. 우리말로만 들으면 곧장 부정적인 단어로 들린다. 그런데 본문의 히브리어 단어를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이 단어(아룸)는 잠언에서는 "슬기로운"으로 번역된다. 예를 들어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잠 14:8)에서 "슬기로운 자"가 바로 그 단어다. 다른 자리에서도 그렇다. 잠언은 이 단어를 좋은 방향의 지혜를 가리킬 때 쓴다.
그래서 이 단어 자체는 부정적이기만 한 말이 아니다. 본디 지혜의 결을 가진 말이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는 같은 단어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 슬기로운 척하는 모습 안에 사람을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들어 있는 속임수의 작동이다. 3장에서 왜 이 단어를 이때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히브리어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 에서 "벌거벗었으나"는 아룸밈, "간교하니라"는 아룸이다. 일부러 이 두단어를 겹쳐놓은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가정을 한번 해보았다.
만일 그렇다면 이 단어유희가 무엇을 말할까? 사람의 "벌거벗음"과 뱀의 "간교함"이 2장 마지막과 3장 첫부분에 바로 연결되어 이어진다. 사람의 무방비, 그리고 그 무방비 앞에 선 능숙한 전략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렇다면 그 전략가는 도대체 누구인가? 본문은 거기서 멈추고 더 풀어 말해 주지 않는다.
이 자리에 답을 보태는 것은 한참 뒤의 본문들이다. 사도 요한은 환상에서 이렇게 적는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 12:9). 또 한 자리에서는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계 20:2)라고 한다. "옛 뱀"이 가리키는 뱀은 어떤 뱀일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뱀은 창세기 3장의 그 뱀이다. "온 천하를 꾀는 자"라는 표현은 짐승에게 붙을 만한 말이 아니다.
바울도 같은 흐름으로 짚는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고후 11:3)라고 적고, 곧이어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를 덧붙인다. "가장하나니"라는 말이 흥미롭다. 겉모습과 그 안에 있는 존재가 다르다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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